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주국의 국가 (문단 편집) === 개요 === 1942년 제정되어 1945년까지 사용된 [[만주국]]의 국가다. [[제목]]은 '''만주국 국가'''([[중국어]]: 滿洲國國歌, [[일본어]]: [ruby(満洲国国歌, ruby=まんしゅうこくこっか)])다. [[1941년]] 말, [[진주만 공습]]을 시작으로 일본은 미국과의 [[태평양 전쟁|전쟁]]을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[[제2차 세계 대전]]으로 번지게 되었다. 일본은 미국에의 선전포고를 통해 오래전부터 가졌던 아시아 태평양 전역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드러낸 셈이었다. 일본은 이 야심을 이른바 [[대동아공영권]]이라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자신들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앞세우고 자신들의 고유신앙인 [[국가신토]]를 공영권 프로파간다의 기본 이념으로 잡아 자신들의 점령지에서 일본의 사상을 주입하고자 했다. 이에 일본의 괴뢰국인 [[만주국]]도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. 이러한 상황에서 만주국에 국가 변경이 다시금 거론되면서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앞둔 1941년 10월, 제2대 총리 [[장징후이]]를 회장으로 한 국가제정위원회가 발족, 여기서 새로운 국가를 정하기로 했다. 하지만 장징후이는 바지사장이었고, 위원회의 모든 실무는 총무청 홍보처장인 일본인 관료 무토 토미오가 담당했다. 특히 첫 두 국가들이 모두 [[중국어]] 가사 기반이었지만 이번엔 [[일본어]] 가사를 먼저 쓰고 나중에 그것을 중국어로 번역했다. 그 결과 [[일본서기]]의 천손강림을 강조한 가사와, 거기에 첫 국가의 작곡가인 야마다 코사쿠가 창가 풍의 곡을 입혀 일본색 충만한 새 국가가 완성되었다. 만주국 국가([[중국어]]: 滿洲國國歌, [[일본어]]: [ruby(満洲国国歌, ruby=まんしゅうこくこっか)])라는 [[제목]]을 가진 [[곡]]이 탄생한 것이다. 불과 10년 사이에 2번씩이나 국가를 갈아치웠기 때문인지, 만주국 정부에서는 50명의 성악가들로 '국가봉창단'을 조직해 전국에 가창 지도를 보내고 신징방송국에도 시도때도 없이 국가를 방송하도록 해 청자들에게 주입시키는 등 보급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. [[http://www2.nhk.or.jp/archives/shogenarchives/jpnews/movie.cgi?das_id=D0001300504_00000&seg_number=001|듣기]] 그 결과 첫 두 국가보다는 좀 더 자주 불리게 되었지만, 실제 공식 행사에서는 오히려 [[기미가요]]가 더 많이 쓰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